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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정책 논평2015. 6. 9. 11:55

세계 대학생 올림픽, 2015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가 7월 3일부터 14일까지 개최된다. 정식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비해 관심이 적지만 이번 광주에서 개최되는 유니버시아드는 광주에, 대한민국에, 그리고 세계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름()를 추구한다는 데 유니버시아드와 광주의 공통점이 있다. 유니버시아드는 아마추어 대학생들이 스포츠를 통해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을 기른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설립정신이 올림픽이 상업화되어가는 것에 대한 반성에 기반하고 있다. 이익을 추구했다면 프로로 직행해 돈벌이에 나섰을 수도 있는 선수들이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기예를 겨루는 전인적 교육의 장이다. 미래의 중심이 될 젊은이들이 인류의 올바른 방향을 함께 생각하고 우정을 쌓는 희망의 장이다.

 

광주는 의향(義鄕)이라고 불릴 정도로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를 주장하고 실천하는데 앞장서 왔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은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고 했고, 동학농민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고비마다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광주는 이익추구 보다 올바름에 민감했기에 경제적으로는 뒤쳐졌지만 한국 민주화의 상징을 넘어 아시아 및 제3세계 민주화의 모델이 되고 있다광주유니버시아드는 민주, 인권, 평화의 광주정신이 지역을 넘어 세계와 호흡하고 세계가 광주를 체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둘째, ()와 예술()을 추구한다는데 유니버시아드와 광주의 공통점이 있다. 유니버시아드는 대학생들의 솜씨를 겨루는 잔치다. 대학의 잔치는 진리를 토론하는 향연(饗宴, symposion)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포지움의 어원인 심포지온은 본래 함께 모여 술을 마신다는 뜻인데, 플라톤의 <향연>에서는 술판 대신 사랑(에로스)이란 무엇인지를 토론하는 자리가 된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시대적 배경이다. 향연이 개최된 시기는 기원전 416, 아테네가 스파르트와의 전쟁 즉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직후 문명화된 삶이 혼란에 빠지고 정의의 관념에 순종하지 않을 때였다. 대다수가 강한 것이 정의라며 전쟁준비를 외칠 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사랑아름다움” “좋은 것”(眞善美)으로 아테네가 다시 일어설 것을 주장하였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아테네는 인류문명의 꽃으로 지금도 살아있지만 스파르타는 영화 ‘300’에서나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광주는 예향(藝鄕)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 예향(禮鄕)으로 불렸다. 예절과 풍속이 바로 서고 학문을 숭상하는 곳, 예향으로 기록되어 있다.(창평향교지) 예는 박문약례(博文約禮), 즉 모든 것을 넓게 배우되 예로써 묶는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학문과 지식의 원천이고 종착지이다. 예가 없으면 배움도 실천도 어지럽게 되어 오히려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예는 조건에 따라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공생을 추구하는 일관된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어떤 처지에서도 통한다.

 

그러므로 예는 상대를 속상하지 않게 하려는, 정이 살아있는 다정다감의 표현이다. ()는 그래서 예()와 통한다. 공자는 예에 서고(立於禮), 예에서 노닌다(遊於藝)고 했다. ()에서 창의, 창조, 예술이 꽃피는 것이다. 광주는 다정다감하여 예에 민감했기에 예술의 고장으로 불릴 수 있었다.

 

셋째, 국경을 넘어 서로 교감하는 정의를 추구한다는 데 유니버시아드와 광주의 공통점이 있다. 유니버시아드의 U는 대학(university)의 의미 외에도 국경을 넘어, 인종과 문화의 차이를 넘는 보편성(universality)과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통일(unity)을 상징한다.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하는 대학생들은 단순히 운동선수가 아니라 미래 세계를 경영할 엘리트들이다.

 

그들이 광주에 와서 광주를 함께 체험하고 우정을 키움으로써 지구촌의 갈등과 분쟁을 극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각자가 속한 나라의 국익을 넘어 인류공통의 미래가치를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 광주유니버시아드는 갈라져 있는 남한과 북한의 마음도 하나로 모으는 통일의 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의는 아직도 대부분 국경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국경 내에서도 전국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광주는 한국 민주화의 과정에서 십자가에 매달리고 대한민국을 살린 공이 있다. 하지만 광주에 대한 밖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왜일까?

 

의로운 사람이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면 듣기 거북해진다. 광주가 그동안 진실을 외면하고 억압하는 세력에 저항하면서 진정성을 알아달라 외치기를 35, 그 동안 광주는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고, 반대세력의 집결지가 되었다. 일부의 과격한 행동은 많은 우호자들까지 고개를 돌리게 하고 있다.

 

이제 광주는 투쟁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정의를 지킨다는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다. 예가 살아야 의도 산다는 것을, 바꿔 말하면 예가 없으면 의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그래서 광주는 예와 예술로 다시 일어서려 한다. 예향(藝鄕) 광주의 아름다움을 꽃피우기 위해서 예향(禮鄕)의 향기를 되찾으려 한다. 불의에 대한 저항에 가려진 시민들의 여유로움, 따스한 인정, 다정다감을 복원하려 한다. 그래서 광주를 품고 있는 무등산처럼 차등없이(無等) 모두를 품는 넉넉함을 회복하려 한다.

 

광주는 빛고을이다. 그 빛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기도 하지만 사회를 온기로 감싸는 따뜻한 빛이기도 하다. 정의는 날카로운 비수가 아니라 따뜻한 온기로 사람들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억울해 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충실하고 서로 보살피면 저절로 빛을 발할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빛고을 광주가 아닐까? 당당한 광주가 넉넉한 광주, 열린 광주, 통 큰 광주, 빛나는 광주로 거듭날 것을 다짐한다.

 

그래서 광주유니버시아드 기간 중 손님맞이 표어를 이렇게 정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열린 도시 광주” “여기는 다정다감 광주입니다.” “예향(禮鄕) 예향(藝鄕) 광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국민여러분, 세계시민 여러분! 예향(禮鄕)의 예향(藝饗)에 초대합니다!

 

(정용화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조직위 부위원장)

 

 

이 글은 조선일보 2015년 6월9일자 29면에 실린 기고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08/2015060803520.html) 의 전문이다.

 

관련기사는 뉴시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0609_0013716273&cID=10520&pID=1050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