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정책 논평2014. 12. 23. 13:37

(이 글은 동아일보 2014년 12월 23일자에 게재된 기고문의 원문(축약전)입니다. 

신문게재본은  [기고/정용화]고려인 동포 외면하는 현실부터 고치자

http://news.donga.com/3/all/20141223/68725788/1 )


다문화가족보다 못한 처지의 고려인동포


금년이 고려인이주 150주년이라는 이유로 언론에서는 많은 관심을 보였다. 고려인들이 살고 있는 서쪽 끝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유라시아를 횡단하거나 자동차를 타고 북한을 거쳐 부산까지 몇 달 걸리는 행사를 치러냈고, 고려인의 역사를 담은 특집방송을 여러차례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고려인들의 현실은 그렇게 야심차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현지에서의 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꿈에 그리던 조상의 땅으로 돌아온 고려인들조차 일반 다문화가족 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고려인동포들은 입국비자에서 미국이나 일본동포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 방문취업(H2)비자로 입국한 동포들은 3~5년 후 돌아가야 해 입국시차가 있는 가족들은 다시 이산가족이 되어야 한다. 해외동포비자(F4)로 입국한 동포들은 단순노무를 할 수 없도록 되어있어 불법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이들은 한국어를 제대로 못해 생활적응력도 떨어지고 노동현장에서도 가장 하급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러한 약점을 이용한 일부 고용주들이 임금을 체불하거나 착취해도 저항하기 힘들어 자살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결혼이민자는 국적을 취득하고 한국의 다양한 복지정책과 다문화정책에 흡수되어 혜택을 받고 있고, 외국인노동자의 경우도 비자(E9)의 특성상 취업처가 정해져 있어 노동법의 테두리 안에서 관리되고 있으나 고려인동포들은 순수 외국인으로 취급되어 법적 보호와 혜택을 전혀 받지못하고 있다.

 

특히 고려인 아이들은 다문화가정과 국내 저소득층 분류에 속하지 않아 저소득층과 한부모가정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지자체에서 방치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역시 고려인들은 외국인 신분으로 자격조건에서 제외되어 혜택을 못받고 있다. 출산 및 보육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이렇게 된 데는 고려인동포를 조선족동포들과 한 묶음으로 생각하는 정책당국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려인동포와 조선족동포는 구분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고려인동포들은 조선족동포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다. 1930년대 소련의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 강제로 흩어져 살게된 이후 고려인들은 생존자체가 급선무였다. 중국동포들은 언어문화공동체를 이뤄 자치주를 인정받고 삶의 터전이 비교적 양호하지만, 고려인동포들은 조상의 말을 잃어버릴 정도로 힘든 환경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한국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한민족으로서 150여년을 살아왔던 민족정체성마저 부정당해 고려인동포들은 지금 조상의 땅에서 더 큰 상처를 받고 있다. 언어, 인종, 종교적 차별 속에 유라시아를 유랑하다가 조상의 땅에 정착하고자 새 희망을 품고 왔지만 고국에서도 유랑생활을 끝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고려인동포들은 돌아갈 곳이 없고 영구귀국을 바란다. 중국동포들은 대부분 자신이 중국인이라 생각하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 돌아가려고 한다. 중국이 날로 성장하고 있는데다 중국에 돌아가도 별 불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려인동포들은 주변부로 밀리다 밀려 왔기 때문에 돌아갈 곳이 없고 마지막 고국에 뼈를 묻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나라를 잃어 해외에서 유랑하게 된 동포들을 조국의 품에 다시 받아들이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의무이기도 하다.

 

셋째, 고려인동포들은 유라시아 시대를 열어갈 소중한 자산이다. 이들은 고난 속에 한민족의 유라시아를 개척했고, 다가올 통일한국의 유라시아 시대를 열어갈 선구자들이다. 조선족의 중국 동북3성과 고려인들의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를 잇는 한민족벨트는 민족문화 전파의 교두보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인을 품어안는 것은 동포애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아야 한다. 국내외 고려인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 등 체계적인 정착 및 생활지원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고려인동포 특별법2013년부터 시행되었지만 거주국(러시아나 중앙아시아)의 생활안정 지원 위주여서 정작 국내에 체류하는 동포들은 소외되어 있다. 그래서 국내체류 동포 지원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고려인동포 특별법 개정안이 최근 새누리당 이인제의원을 대표로 하여 국회에 발의되었다. 조속히 통과되어 고려인동포들의 눈물을 걷어주기 바란다.

 

차제에 50여만명의 고려인동포들에게 영주권을 부여할 것을 제안한다. 다문화정책으로 많은 예산과 정책이 투입되고 있는데 그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동포들에 대한 것이 아닌가? 현재 2만여명이 입국해 있는데 생김새나 정체성, 문화 모든 면에서 그들은 가장 빨리 한국인이 될 수 있다. 특히 그 자녀들을 잘 키우는 것은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확실한 대책도 될 수 있다


독일은 소련이 해체되자 160여만명의 독일계에 영주권을 부여하였다. 나라잃은 설움을 3~4세대에 걸쳐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우리말을 못해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는 고려인동포들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정책을 촉구한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