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정책 논평2013. 10. 26. 08:47

지난 주말(1019) 마키아벨리 군주론 저술 50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 다녀왔다. 한국정치사상학회/한국정치학회/아산정책연구원이 공동주최한 회의에서 하루종일 11편의 논문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거의 6년만에 학회에 참석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 것은 그간 학계의 관심과 수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동료 선후배 학자들은 과학적 정치학의 비조, ‘현실주의 정치학의 개창자로 불리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정치리더십 차원, 한비자와 같은 동양의 정치현실주의자와 비교, 현대정치적 의미 등 여러 차원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을 했지만 대체로 실망스러웠다. 정치의 목적과 수단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학 교과서에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가치의 권위적 분배과정”(데이비드 이스턴) “적과 동지 관계 구분”(칼슈미트) 양자 모두 정치의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가치이고 우적관계인지 설명이 없다. 그러니 결국 생존을 위한 권력투쟁만 남는 것이다. 이런 정치학의 뿌리에 마키아벨리가 있다.

 

이른바 정치현실주의는 동서양의 전통적인 윤리적 인간관을 이상주의로 치부하고, 성악설에 기반하여 이기적이고 지배욕, 권력욕이 충만한 인간들이 서로 투쟁하는 현실을 직시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과학적 정치학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현실주의가 인간의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내가 선한지 악한지,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는지 아닌지는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된다. 자기는 선한데 남들이 다 악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현실주의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면 과학적 정치학도 토대가 무너져 성립할 수 없다.

 

근대정치()의 성과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자유와 평등이 발견되고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양자는 인간성에 대한 불신(성악설)과 개인주의(결국 이기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겉으로는 자유와 평등이 신장된 것 같지만 인간관계는 점점 삭막해지고 있다. 윤리 보다 권리가 앞서기 때문이다.

 

청중에서 정곡을 찌르는 말이 나왔다. 정신과의사라는 분이 갈수록 우리사회에 정신병환자가 늘고 있다고 하면서 정신병의 공통점은 나 잘났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자유와 권리관념이 앞서고 윤리도덕관념이 사그라들고 있는 것에 원인이 있다고 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나라의 진보진영에서 마키아벨리에게 관심이 높아지고 그의 사상에서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덕주의적 열정을 바탕으로 유권자들의 선의나 진정성, 양심에 호소하는 그간의 진보정치가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마키아벨리의 현실’ ‘권력정치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최장집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한국정치에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마키아벨리다고 주장한 바 있다.(2010/7/10)

 

선거승리의 결과를 얻지못해 초조한 심정은 알겠으나 도덕성을 잃어버린 보수 못지않게 도덕성을 던져버린 진보 역시 매력없기는 마찬가지며 필패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성균관대 윤비교수) 더 예리한 지적은 권력정치를 차용하는 것보다도 더 큰 문제는 근본적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이상이 무엇인지를 모르거나 오독하고 있는 것이다. (경희대 이동수교수)

 

정치의 목적은 공동체의 평화라고 생각한다. 안으로 가정의 평화에서부터 밖으로 국제관계의 평화까지 포함한다. 평화는 폭력의 부재만이 아니라 배려와 사랑을 포함한다. 그래서 정치는 궁극적으로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나가려는 것이다. 권력은 공동체의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수단 중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 공동체 평화를 위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불러일으키는 영감과 공감과 설득의 힘은 권력의 효능에 비할 바가 아니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새정치새사람을 넘어 한국정치는 이제 좋은 정치를 고민해야 한다. ‘좋은 정치좋은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어떻게 사는게 잘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나 자신의 평화와 행복, 내 이웃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지 우리 모두 성찰해야 한다. 우리는 그 원형을 공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맹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정치인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정용화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